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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농구의 역사를 이야기하게 되면 대부분 마이클 조던을 떠올리겠지만, 그는 워낙 독보적이면서도 정교해진 미디어와 상업이 창출한 인물이기에 다음 기회에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에 스포츠의 본질이 경쟁에 있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은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이다. 두 사람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보스턴 셀틱스를 대표하는데, 둘 사이가 어떤 관계였는지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쉽게 알기가 어려웠다. 성공을 기준으로 한다면 매직이 다섯번의 우승을 했으니 세번을 이긴 버드보다 우승반지가 더 많다. 반면 래리 버드는 1998년에 매직 존슨보다 4년 앞서서 명예의 전당의 일원이 되었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피할 수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둘 중에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가? 요즘식으로 말하면 메시와 호날두 중에 누가 더 위대하냐는 것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경기를 보거나 잘 편집된 활약상을 화면으로 보며 즐기는 우리가 종종 잊는 것은 각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GOAT라는 단어를 르브론 제임스처럼 스스로에게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는 않다. 매직과 버드의 증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한 선수가 위대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동일한 위대함을 원하는 경쟁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그렇게도 역사에 남을 만큼의 위대할 수 있었던 바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더욱 대단한 이유는, 자신이 속한 팀의 동료들까지도 한 단계 올라가게 만드는 영향력에 있었다. 자신만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까지 어제 보다 나은 선수로 향상시키는 능력, 연습장과 경기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분위기를 압도하는 존재감이 바로 리더쉽이 아닐까.


HBO에서 2010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경쟁자의 교제’A courtship of Rivals라고 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순적인 두 단어를 사용한 것을 실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알게되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프렌치 릭French Lick이라는 인디아나 주 남부의 촌에서 태어난 버드는 가난과 쟁투해야만 하는 백인가정에서 태어났다. 네 형제가 항상 말썽을 일으켰지만 가진 것을 전부로 생각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영상의 표현에 따르면 어두운 악령에 시달렸고 결국 이혼후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버드는 사람들과 불필요한 친분을 맺고자 하지 않았고 과묵하게 지내는 선택을 했다. 보스턴에서 우승행사를 하면서도 ‘내가 유일하게 머물고 싶은 곳은 프렌치 릭이다’라고 뜬금없는 말에서도 그의 마음이 항상 그 시골 한 구석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농구로 유명한 인디아나 대학에 진학을 하고 23일 만에 자퇴를 하면서 그렇게 크고 사람이 많으며 자유분방한 곳은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한 것에서도 그의 성격을 옅볼 수 있다. 이후 지인의 권유로 대학농구 판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인디아나 주립대학에 진학하고 거기에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어빙 존슨은Earvin Johnson 미시간 주의 수도인 랜싱에서 여섯 형제 중 하나로 태어났다. 그는 제네럴모터스의 노동자였던 아버지로 부터 근면함에 대해 항상 배웠다고 한다. 그 역시도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1960-70년대에 미국 사회에 팽배했던 인종차별을 경험하면서 자라났다. 그가 다녔던 학교도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로 유명했다. 처음에 농구장에서 백인동료들이 공을 패스하지 않고 무시하는 시기를 겪으며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로 대표되는 특유의 낙관주의와 친화성으로 그는 주변의 사람들의 환대를 이끌어내며 고등학교 생활을 하였고 이 시기를 통해서 백인들과 그 사회를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이후에 미시간 주립대학에 진학하여 농구활동을 계속한다. 특이하게도 그의 우상은 보스턴 셀틱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신화적인 선수 빌 러셀Bill Russell이었다.


두 사람은 1978-79년 대학농구 결승전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결과를 미리 말하자면 존슨이 속한 미시간 대학이 인디애나 대학을 75-64로 압도하였다. 이후에 버드는 당시의 패배를 생각하면 아직도 쓴맛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비교적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된 어빙의 팀의 활약 뿐만 아니라 버드에 의존하는 전술을 더블팀으로 처절하게 봉쇄했기 때문이다. 전국 스타가 된 존슨은 레이커스의 선택을 받아서 우승을 염원했던 카림 압둘 자바와 함께 명가의 재건에 도전하게 된다. 참고로 당시 개성 넘치는 또 다른 선수로는 닥터 제이로 불리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줄리어스 어빙이 있다. 반면 래리 버드는 셀틱스와 계약을 하게 되는데, 미국 프로 농구 역사상 최다승을 이룬 명성에 못지않게 바로 전해에 꼴찌를 하는 처참한 상황에 있었다.


이 대목에서 다큐의 감독이 간략하게 설명하는 70년대 미프로농구의 상황은 정말로 흥미로웠다. 스포츠니까 항상 인기가 있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과는 달리, 당시 농구는 중계권을 지상파가 아무도 사지 않아서 녹화되어 심야에나 방영되었고 고교농구보다 한참 인기가 떨어졌다. 그 이유는 당시 경기마다 개인기를 내세우는 선수들의 방식, 매번 오가는 주먹질과 욕설 그리고 마약과 매춘 등으로 이제는 신문조차 오르지도 않는 선수들의 행실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NBA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존슨과 버드를 통해 바닥을 치는 농구문화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수립한다. 백인과 흑인, 동부와 서부 그리고 리그를 대표하는 두 팀의 구도는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했고 다시 사람들을 경기장으로 그리고 지상파의 계약을 통해 텔레비전 앞에 모이게 만들었다. 그들이 속한 각 팀은 승리를 주고 받다가 1984년에 하나 뿐인 왕좌를 두고 격돌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둘은 몰락했던 NBA를 부활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경기와 관련된 내용이나 경기자체를 유튜부에서 볼 수 있으므로 이는 생략하고, 다큐에서 흥미로웠던 장면을 몇 가지 말하자면, 당시 잘나가던 컨버스 신발 광고를 둘이 함께 촬영하면서 벌어진 에피소드이다. 혹자는 에어조던 브랜드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매직과 래리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농구화가 있었다. 콘티에 따르면 매직존슨이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리무진을 타고 지나가다가 농구장에 있는 버드를 만나는데, 서로 신발자랑을 하다가 누가 더 잘하는지 시합을 한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광고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히려 뒷이야기가 더 흥미로운데, 광고를 촬영한 장소가 프렌치 릭이라 존슨이 끝까지 가기를 거부했다고 했다. 1차 촬영이 끝나고 따로 점심식사를 하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했으니 같이 하자는 버드의 초대에 응한 존슨은 가족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가 결국은 같은 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급격히 친해졌다고 했다. 입심이 좋은 존슨은 훗날에 ‘래리의 엄마가 나를 프로농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라고 했다’고 해서 식사에 응했다고 했다. 그렇게 둘 사이에 우정이 시작되었지만 개성이 강한 두 사람의 표현방식은 극과 극이었다. 이후에 경기장에서 만나서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우정을 표현할 것을 기대했던 존슨과는 달리 버드는 냉랭함으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버드는 ‘나는 운동장에 친분을 쌓기 위해 가지 않는다.’라는 말로 잘라 표현했다.


하지만 이들 사이의 우정이 확인되는 다른 에피소드가 있으니 첫 번째는 존슨이 에이즈 확정판결을 받고 1991년에 은퇴선언을 하게 되면서였다. 록 허드슨이나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이 병에 대한 편견은 극심했고, 동성애와 거리가 멀었던 존슨은 농구팀의 동료들, 함께 파티를 했던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아이제아 토마스와 같이 절친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로 부터 상처를 받게 된다. 넘치는 에너지 그리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했던 존슨에게는 악몽과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때 래리 버드가 존슨에게 전화를 하여 둘이 흐느끼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는 말로 위로를 건냈는데, 존슨은 그 시기에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바르셀로나 1992년 하계 올림픽이다. 당시 처음으로 프로선수들이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에이즈로 치료중이던 존슨과 무리한 운동과 부상으로 서있기 조차 힘들었던 버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저 미국팀의 일방적인 대승과 금메달로 기억되는 이 스포츠 행사의 뒷편에는 함께 뛸 마지막 기회를 갈망했던 두 사람의 우정을 보여준다.


HBO의 다큐는 둘 사이의 일화들을 차분하게 보여주면서 스포츠라는 화려한 영상은 결국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임을 기억하게 해준다. 어빙이 ‘마법사’라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말하는 점에서도 이들 역시 그 안에 있으면서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서 더 많은 우정과 관련된 일화들이 궁금하다면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한 데이비드 레터만 쇼나 명예의 전당 헌정연설 등등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xbIoHqFa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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